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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form Faith Interview

길을 만든 사람

Paul은 홍성국이라는 이름 뒤에 접혀 있던 여러 장의 시간을 펼친다. 문학으로 세계를 건너던 소년, 흙에서 생계를 배운 청년, 평촌의 새 도시에서 공동체를 일군 목회자, 코트와 화선지 위에서 다시 배움을 시작한 한 사람의 늦은 계절까지.

Interview by Paul Hong Sung Kuk Pastor, Reader, Father

Archive Room. 오래된 책과 먹향, 라켓 손잡이에 남은 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신학 노트가 한 자리에 놓인다. 이 인터뷰는 한 목회자의 이력보다, 한 사람이 평생 붙잡아 온 질문의 방향을 듣는 자리다.

The road made by walking

세계문학의 문장들로 먼 세계를 건너던 소년은 중학교 뒤 밭으로 돌아가야 했고, 독일의 신학과 철학을 향하던 청년의 꿈은 가난 앞에서 접혔지만, 접힌 지도는 끝내 사라지지 않아 평촌이라는 새 도시의 한복판에서 교회와 사람을 세우는 길로 다시 펼쳐졌다.

Ink
Court

홍성국 목사의 삶에는 서로 다른 운동장이 있다. 밭이 있었고, 교회가 있었고, 테니스 코트가 있었고, 서예의 화선지가 있었다. 각각의 자리는 그에게 몸을 쓰는 법, 기다리는 법, 사람을 놓치지 않는 법, 한 획을 쉽게 긋지 않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이 대화는 목회 성공담보다 조금 더 넓다. 한 인간이 어떻게 포기한 꿈을 다른 형태의 소명으로 바꾸어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홍성국 목사를 말할 때 평촌감리교회 개척자라는 문장은 중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는 한 도시가 막 생겨나던 때에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가 한 사람의 신앙만이 아니라 도시의 공기와 세대의 방향, 사회의 고통과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신앙을 교회 안에 가두지 않으려는 습관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소년 시절부터 그는 책을 좋아했다. 특히 세계문학은 그에게 가난한 집의 좁은 방보다 넓은 세계를 열어 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빨랐다. 중학교를 마친 뒤 그는 밭으로 갔다. 문학을 읽던 손으로 흙을 만졌고, 독일 유학을 꿈꾸던 마음으로 한국 교회의 현장을 붙잡았다. 그 간극이 오늘의 홍성국을 만들었다.

"하나님은 제가 못 간 길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사람들 속으로 다시 내게 하셨습니다."

홍성국 목사 국민일보 인터뷰 사진
국민일보 2015년 인터뷰에 공개된 홍성국 목사 사진을 원격 이미지로 참조했다.

Paul

목사님을 소개할 때 보통 평촌감리교회 개척자, 말씀 사역자, 사회성화 운동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먼저 인간 홍성국부터 묻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홍성국은 어떤 아이였습니까?

Hong

저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세계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죠. 집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는데 마음은 늘 먼 나라로 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눈밭, 독일의 거리, 프랑스의 살롱, 그런 곳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글을 읽다 보면 제가 잠시 그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책만 읽고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흙을 만지는 일은 낭만이 아닙니다. 몸이 먼저 압니다. 해가 뜨면 움직여야 하고, 비가 오면 걱정해야 하고, 수확이 좋지 않으면 집안 공기가 달라집니다. 어린 마음에는 억울함도 있었습니다. 나는 책을 더 읽고 싶은데 왜 밭에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저를 많이 가르쳤습니다. 흙은 정직합니다. 빨리 자라라고 소리친다고 자라지 않습니다. 교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목회는 결국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소년 시절의 농사가 저에게 목회의 아주 오래된 학교였던 셈입니다.

Paul

세계문학을 좋아하던 소년이 농사를 지었다는 장면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때 문학은 도피였습니까, 아니면 구원이었습니까?

Hong

도피이기도 했고 구원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너무 힘들 때 조금은 도망갈 곳이 필요합니다. 책은 저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문학은 도망만 시키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오게 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선택을 읽다 보면 제 처지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어디서나 가난하고, 어디서나 외롭고, 어디서나 사랑을 구하더군요.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신학을 할 때도 저는 추상적인 교리보다 인간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게 됐습니다. 문학은 사람을 단정하지 않게 해 줍니다. 목회자에게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교인은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상처가 있고, 흔들리는 사람도 깊은 진심이 있습니다. 문학을 좋아했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훈련이었습니다.

Paul

독일로 가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꿈을 접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Hong

쉽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저에게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루터의 땅이기도 하고, 칸트와 헤겔과 본회퍼의 언어가 흐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곳에 가면 내 질문이 더 넓어질 것 같았습니다. 신학과 철학을 제대로 붙들고 싶었습니다. 목회자가 되더라도 생각이 얕은 목회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시대와 형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의 문제도 있었고, 가족의 문제도 있었고, 제 앞에 놓인 목회의 현실도 있었습니다. 포기라는 말은 담담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마음 한쪽이 오래 시큰거리는 일입니다. 저는 독일에 못 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참 묘합니다. 못 간 길이 반드시 사라진 길은 아니더군요. 저는 독일에서 공부하지 못했지만, 독일 신학이 던지는 질문과 평생 씨름했습니다. 본회퍼를 붙들었고, 몰트만이 말하는 십자가와 희망의 방향을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에게 독일은 지리적 장소이기 전에 질문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지 못한 길을 책과 설교와 목회 현장 안에서 걸었습니다.

Paul

본회퍼와 몰트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목사님의 신학은 근본주의적 폐쇄성보다는 사회구원과 사회성화의 방향에 가깝게 읽힙니다.

Hong

신앙은 영혼을 구원하지만, 영혼만 구원한다고 말하는 순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혼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이 있고, 가족이 있고, 노동이 있고, 도시가 있고, 가난이 있고, 폭력이 있고, 제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만나실 때도 영혼만 따로 떼어 보시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사람을 먹이셨고, 병든 사람을 고치셨고, 소외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본회퍼에게서 저는 책임 있는 교회를 배웠습니다. 교회는 세상 밖에서 자기 순결만 지키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의 고통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야 합니다. 몰트만에게서는 십자가와 희망이 만나는 지점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미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고통받는 세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사회구원이라는 말을 저는 거창한 이념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한 아이가 교회 안에서 주체로 세워지는 것, 외로운 이웃이 밥을 먹는 것, 장기기증과 생명나눔을 말하는 것, 선교사가 머물 집을 돕는 것, 이런 작은 일들이 모두 구원이 사회적으로 번역되는 장면입니다. 신학은 책상 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사람의 식탁과 골목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Paul

평촌감리교회를 개척하던 시절로 가 보겠습니다. 신도시 평촌에서 교회를 세운다는 건 어떤 일이었습니까?

Hong

평촌은 말 그대로 새 도시였습니다. 새 아파트, 새 도로, 새 학교, 새 상가가 생겨나던 때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곳이지만, 새 도시는 사실 외로운 곳입니다. 사람들은 이사를 와서 주소는 생겼지만 아직 관계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새 학교에 적응해야 했고, 부모들은 대출과 직장과 교육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건물 하나를 얻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에게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개척이라는 말은 멋있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늘 부족합니다. 사람도 부족하고, 재정도 부족하고, 제 자신도 부족합니다. 어느 날은 용기가 생기고, 어느 날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도시의 고군분투 속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불안한 사람들과 함께 자라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새 도시에는 새 집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 관계와 새 신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평촌감리교회가 그런 자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Paul

목사 홍성국은 꽤 진지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인간 홍성국은 테니스도 치고 농담도 잘하실 것 같습니다. 테니스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Hong

처음에는 건강관리였습니다. 목회자는 몸을 쓰지 않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사실 몸이 많이 상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사람을 만나고, 설교 준비를 하고, 회의하고, 장례와 심방을 다니다 보면 몸이 긴장을 풀 시간이 없습니다. 누군가 건강을 좀 챙기라고 해서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라켓이 공을 맞히는 건지, 공이 라켓을 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테니스가 제게 맞았습니다. 테니스는 혼자 잘한다고 되는 운동이 아닙니다. 상대가 있고, 코트가 있고, 공의 리듬이 있습니다. 힘으로만 치면 밖으로 나가고, 너무 조심하면 네트에 걸립니다. 목회와 비슷합니다. 너무 밀어붙이면 사람이 다치고, 너무 물러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절한 타점이 중요합니다.

이제 테니스는 제 인생 운동이 되었습니다. 코트에 서면 직함이 조금 내려갑니다. 목사도 실수합니다. 헛스윙도 하고, 괜히 폼만 멋있게 잡다가 공은 엉뚱한 데로 갑니다. 그게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몸으로 배우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Paul

서예는 나이 들어 시작한 제2의 적성이라고 들었습니다. 목회자에게 서예는 어떤 의미입니까?

Hong

서예는 늦게 만난 선물입니다. 젊을 때부터 글씨를 잘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먹을 갈고 붓을 드는 시간이 제 마음을 정돈해 주었습니다. 설교는 말로 나가는 글이라면, 서예는 침묵 속에서 남는 글입니다. 둘 다 말씀을 다루지만 호흡이 다릅니다.

붓은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마음이 급하면 획이 급합니다. 힘을 과하게 주면 먹이 막히고, 힘을 빼야 할 때 빼지 못하면 글자가 딱딱해집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너무 힘을 주면 은혜가 아니라 고집이 됩니다. 너무 느슨하면 형태를 잃습니다. 한 획을 긋는 일이 제게는 기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서예가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 이유는, 늦게 시작해도 새 재능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자꾸 자기 인생의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붓을 들면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 사실이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또 젊게 합니다.

Paul

이제 남편과 아빠로서의 홍성국을 묻겠습니다. 목회자는 공적인 사람이지만 가족에게는 늘 충분하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있을 것 같습니다.

Hong

있습니다. 목회자는 많은 사람의 사정을 듣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늦게 들을 때가 있습니다. 밖에서는 좋은 말을 많이 하면서 집에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말을 아낄 때가 있지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돌아보면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가족은 제 사역의 배경이 아니라, 제 인생의 가장 정직한 거울입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목사라고 불러 주지만, 집에서는 그냥 남편이고 아빠입니다. 설교가 좋았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왔는데, 가족의 표정을 제대로 못 읽었다면 그날의 목회는 어딘가 비어 있는 겁니다. 이건 나이가 들어서야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래도 가족은 저를 오래 참아 주었습니다. 제가 교회 일로 바쁘고, 신학적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해질 때도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저는 가정에서 늘 좋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자주 고맙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늦었지만, 늦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Paul

외아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이고 싶었습니까? 그리고 실제로는 어떤 아버지였다고 생각하십니까?

Hong

마음으로는 좋은 아버지이고 싶었습니다. 아들의 말을 잘 들어 주고, 길을 열어 주고, 신앙을 강요가 아니라 기쁨으로 보여 주는 아버지. 그런데 실제 삶은 늘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일정은 바쁘고, 교회 일은 끊이지 않고, 집에서도 생각은 다음 설교와 다음 회의로 가 있었습니다. 외아들이었으니 제 빈자리도 더 크게 느꼈을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설교보다 어렵습니다. 설교는 준비한 원고가 있지만, 아들의 시간은 원고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웃음) 어떤 날은 단호해야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안아 주어야 합니다. 저는 그 균형을 늘 잘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들에게도 후학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완벽한 어른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잘못했을 때 사과할 수 있는 어른이 되라고요.

신앙도 그렇게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완벽해서 아들이 믿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서는 모습을 볼 때 신앙이 전해집니다. 아버지로서 제 바람은 결국 하나입니다. 아들이 제 업적보다 제 진심을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Paul

신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평생 씨름해 온 신학을 이제 후학들에게 기준으로 남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기준입니까?

Hong

저는 후배들에게 복잡한 신학 지식을 과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기준은 남기고 싶습니다. 첫째, 신학은 성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둘째, 성서는 교회의 삶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의 삶은 사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분리되면 신학은 쉽게 병듭니다.

성서 없는 사회운동은 교회의 뿌리를 잃을 수 있고, 사회 없는 성서해석은 자기 안위의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교회 없는 신학은 실제 사람을 돌보는 훈련을 잃기 쉽습니다. 저는 후학들이 이 균형을 배웠으면 합니다. 본회퍼를 읽되 교회를 사랑하고, 몰트만을 읽되 현실의 고통을 낭만화하지 않고, 웨슬리를 말하되 성화가 개인 윤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 신학 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가 씨름해 온 것들을 더 정리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체계라기보다, 현장에서 설교하고 목회하고 사람을 만나며 배운 신학의 기준입니다. 후배들이 길을 잃을 때 완벽한 지도는 아니어도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 정도는 남기고 싶습니다.

Paul

평생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함께 돌아보면, 목회와 인생은 결국 고군분투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떤 마음입니까?

Hong

인생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간절히 원한 길은 닫히고, 생각지도 못한 길은 열릴 때가 많습니다. 독일에 가지 못했을 때는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이 없었다면 제가 한국 교회의 현장을 그렇게 집요하게 붙들었을까요. 농사를 지낸 시간이 없었다면 사람과 교회가 자라는 속도를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테니스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이 든 몸이 아직 배울 수 있다는 기쁨을 알았을까요. 서예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침묵 속에서 말씀을 쓰는 기쁨을 알았을까요.

물론 모든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힘든 건 힘든 겁니다. 가난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포기는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개척은 낭만보다 버티는 시간이 많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한 일도 있고, 후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 모든 것을 한 줄로 꿰어 보게 합니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감사가 많습니다. 아주 유쾌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제 인생을 제가 짠 계획표보다 훨씬 복잡하게 운영하셨습니다. (웃음) 저는 그 복잡함 속에서 많이 투덜거렸지만, 돌아보니 그 길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Paul

오늘날 목회를 하는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Hong

목회는 결국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큰 일을 하겠다는 마음보다, 맡겨진 작은 일 하나를 진심으로 붙드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한 사람의 안부를 묻는 일, 설교 한 문장을 정직하게 붙드는 일, 장례와 심방과 회의의 작은 순간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일. 그런 사소해 보이는 자리에서 목회자의 영혼이 드러납니다.

후배들이 너무 빨리 성과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능력을 전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함께 섬기는 자리입니다. 목회자는 주인이 아니라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많이 아는 것보다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는 대단한 결심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매일의 작은 순종, 작은 진심, 작은 정직이 쌓여 길이 됩니다. 그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이 좋은 목회자라고 믿습니다.

  • 문학과 농사 세계문학을 통해 넓은 세계를 꿈꾸었고, 농사를 통해 기다림과 몸의 정직함을 배웠다.
  • 독일의 꿈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러 떠나고 싶었지만, 접힌 꿈은 본회퍼와 몰트만을 향한 평생의 질문으로 남았다.
  • 평촌 개척 신도시의 외로움 속에서 교회를 관계와 신뢰의 공동체로 세우려 고군분투했다.
  • 테니스와 서예 몸을 살린 운동과 늦게 만난 붓은 목회 이후의 삶까지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리듬이 되었다.

Editor Note. 이 페이지는 공개 기사와 기존 아카이브, 그리고 사용자가 제공한 생애 메모를 바탕으로 Paul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한 발행용 원고입니다. 가족 관련 문답은 이름과 사적 세부를 특정하지 않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태도와 성찰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